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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기술
햇살 드는 창가 카페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펜을 턱에 대고 미소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양진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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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만나는 순간의 고찰따뜻한 이야기 제 5화

영업 가는 날, 카페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분홍빛 회의실에 들어섰다.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러 갔다가 풀어야 할 숙제를 받아온 날, 산수 문제를 좋아하던 아이가 사업가가 되어 배운 것.

글쓴이 Jeensuk Yang후지쯔, 메타, 암웨이 등 일본·미국 시장의 대기업과 한중일미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25년간 IT팀을 이끌었습니다. 그 경험을 중소기업의 첫걸음에 씁니다.

최종 수정 약 4분

제 5화ATATAKAI STORY · 고객을 만나는 날원문 2026년 3월 5일

어제는 소위 말하는 영업을 다녔다.

낯선 회사에 방문해 나와 우리 회사를 소개하는 일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그래도 아직 어색할 때가 있다. 익숙해졌다는 것이 늘 편안해졌다는 뜻은 아닌가 보다.

처음 회사 소개를 할 때는 내세울 것이 많지 않았다. 회사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도, 결국 내가 어떤 일을 해온 사람인지 설명하다 끝나곤 했다. 회사의 이력보다 내 이력이 길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에 대한 소개는 짧아지고, 회사에 대한 소개는 길어진다. 그동안 해온 일들이 하나둘 쌓여, 이제는 회사도 제 이야기를 갖게 된 모양이다.

좀 더 지나면 내 소개를 빼도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날이 조금 기다려진다.

만나기 전, 카페에서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고 몇 시간 일찍 고객사 근처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근처 카페로 들어가 오늘 나눌 이야기를 정리했다.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카페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읽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일을 한다. 그런데 이어폰을 끼고 나만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과 살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주변의 말소리와 움직임은 백색소음이 되고,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동안 천천히 움직이는 배경화면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오늘 만날 사람과 나눌 이야기를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러 온 날, 이렇게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한 모양이다.

분홍빛 회의실

그런 준비를 마치고 고객사를 방문했다.

23층.

입구부터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한국 상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회사라고 들었는데, 사무실 입구에 한국 상품들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은 분홍빛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행사가 끝난 뒤 버리기 아까운 소품들을 가져와 사무실을 꾸몄다고 한다.

한번 쓰고 버려질 뻔한 물건들이 여기서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사연을 듣고 나니 분홍빛 회의실이 조금 더 정겹게 보였다.

분홍빛 선반에 한국 상품이 진열된 회의실에서 양진석 대표가 손짓하며 설명하고, 맞은편의 대표님과 직원이 귀 기울이는 모습
그림 1 · 버리기 아까운 소품으로 꾸민 분홍빛 회의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설명하러 갔다가, 숙제를 받아오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언제나 느끼지만, IT나 AI에 익숙하지 않은 대표님들에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내게는 익숙한 말도 상대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 말이 자신의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면, 설명을 오래 듣는다고 해서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에는 번역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기술을 고객이 매일 겪는 일의 언어로 옮기는 일.

아, 정말 현명한 사람은 어려운 것도 쉽게 풀어 이야기한다는데.

나에게는 아직 숙제가 남아 있다.

내 설명이 끝나자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표님
설명을 다 듣고“저는 잘 몰라요. A, B, C가 힘드니 제안 주시면 검토할게요.”

그 말씀을 들으니 감사했다. 지금 이 회사가 어떤 숙제를 안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러 갔다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받아왔다.

잘 고민해 봐야겠다.

산수 문제를 좋아하던 아이

어릴 적 산수를 좋아했다.

어려운 문제 하나를 놓고 며칠씩 끙끙거리던 때가 있었다. 이리 풀어보고, 저리 생각해 보고. 도무지 모르겠다고 덮었다가도 다시 들여다보곤 했다.

그 과정은 힘들었다. 그래도 어느 순간 풀이가 보이고, 막혀 있던 생각이 이어질 때의 기쁨이 좋았다. 그 기쁨 때문에 또 다음 문제를 붙잡았던 것 같다.

스탠드 불빛 아래 나무 책상에서 턱을 괴고 공책에 연필로 문제를 풀고 있는 안경 쓴 어린 시절의 양진석 대표
그림 2 · 며칠씩 끙끙대던 산수 문제. 풀이가 보이는 순간의 기쁨이 좋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책 위에 적혀 있던 산수 문제가 이제는 고객의 과제로 바뀌었다. 다만 그 문제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들어 있다. 풀어내면 그 사람의 일이 조금 수월해질 수 있다. 그래서 더 잘 풀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래도 풀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들여다보고 싶다. 당장 답이 보이지 않을 때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일도 그런 것이었다.

고객사 문을 나서며 대표님의 차분한 모습이 떠올랐다.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분들을 만나면, 그분들만의 고요한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곁에 있으면 배우게 되는 태도 같은 것.

오늘도 많이 배웠다. 이 만남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도록, 받아온 숙제를 잘 풀어봐야겠다.

사업가라는 역할

내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

사업가라는 이 역할이 나는 싫지 않은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또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 커다란 산 앞에 서면 잠시 막막해진다.

나
큰 산 앞에서‘이걸 어떻게 넘어가지.’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나
마음을 고쳐먹고‘그래, 한 발 한 발 가보자.’

날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서 좋다. 새로운 분들을 만나서 좋고, 몰랐던 것을 배우는 일이 좋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끙끙대다가도, 어느새 그 안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제법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한 타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한 타는 지금 치려는 이 한 타다. 지나간 실수도, 남은 홀에 대한 걱정도 잠시 내려놓고 눈앞의 공을 바라보아야 한다.

해 질 녘 산과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골프장 티잉 그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쥐고 발 앞의 공을 내려다보는 양진석 대표의 뒷모습
그림 3 · 지나간 실수도, 남은 홀 걱정도 내려놓고. 지금 치려는 이 한 타.
이 화의 한 줄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일 것이다.

오늘 만난 사람, 지금 내 앞에 놓인 숙제, 그리고 내가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

지금을 즐기자.

이 글은 2026년 3월 5일 개인 블로그에 쓴 「고객을 만나는 순간의 고찰」(thejino.com)을 다듬어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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