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의 변천따뜻한 이야기 제 6화
1995년 처음 산 노트북에서 스마트폰, 그리고 AI까지. 책상에서 주머니로, 이제는 생각 속으로 들어온 기술. 끝나지 않는 공부가 즐거움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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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여름, 복학을 하며 처음으로 노트북을 샀다.
지금이야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사정은 달랐다. 적어도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나 말고 노트북을 들고 수업에 들어오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그때 컴퓨터란 전산실에 가야만 쓸 수 있는 기계였다. 그런데 그 컴퓨터를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듯하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이미 우리가 일하고 배우는 방식의 중심축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언제쯤 끝나는 공부
90년대 말이 되자 직장의 풍경도 바뀌기 시작했다.
타자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사람들은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엑셀로 숫자를 정리하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요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하나를 익히면 또 하나가 나타나는, 그야말로 ‘배움의 지옥’이었다.
어느 날 후배 하나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딱히 해 줄 대답도 없었다. 나 역시 똑같은 처지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일이었다. 하지만 IT라는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배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 갔다.
밥을 먹는 데 특별한 결심이 필요하지 않듯,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도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다. 그토록 힘들게 느껴지던 일이 어느새 삶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특별했던 것이 평범해지기까지
그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아이폰이 등장했고,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서 하던 일의 일부가 주머니 안으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그저 편리한 전화기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없이 일하고 생활하는 하루를 상상하기도 어려워졌다.
처음 접했을 때는 그토록 신기했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나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된다.
변화란 어쩌면 특별했던 것을 평범한 일상으로 바꾸어 놓는 시간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AI 없이 어떻게 일했더라
2022년 11월 30일,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삼 년이 조금 더 흘렀다.
며칠 전 회의에서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랬다.
분명 AI 없이 일해 온 시간이 훨씬 긴데, 이제는 AI와 함께 일하는 쪽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처음에는 새로운 도구 하나가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도구만 바뀐 것이 아니라, 일을 시작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생태계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AI가 어렵고 낯선 산처럼 느껴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어디서부터 올라가야 할지, 올라가면 무엇이 보일지 막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산이 이제 꽤 익숙한 산책길이 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구글이나 네이버부터 열었다. 요즘은 습관처럼 챗지피티나 제미니를 찾는다.
물어보고, 답을 읽고, 다시 묻는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내가 왜 그 문제를 궁금해했는지, 그 질문의 본질부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질문 하나를 들고 들어갔다가 더 좋은 질문을 가지고 나오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꽤 재미있는 변화다.
예전의 검색은 내가 찾는 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면, 지금의 AI와 나누는 대화는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요즘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AI에게 부탁한다.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고.
그러다 보면 감탄할 때가 참 많다.
같은 문제인데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생각에 이름이 붙고,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던 것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
인사이트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 있었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관계를 발견하는 일.
나는 오래전부터 똑똑한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혼자 고민하다 막히면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 주고, 내가 아는 것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 주는 친구들 말이다.
요즘은 마치 세계의 석학들과 매일 한자리에 앉아 일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AI가 그들 자신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관점을 빌려 문제를 바라보고, 거기에 내 경험을 더해 새로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무엇보다 즐겁다.
책상에서 주머니로, 그리고 생각 속으로
돌아보면 컴퓨터는 내 책상으로 들어왔고, 스마트폰은 내 주머니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AI는 내가 생각하는 과정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책상에서 주머니로, 그리고 생각 속으로.
기술이 이동한 자리를 따라 우리의 일하는 방식도 함께 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구는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인가 배우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95년 여름, 처음 산 노트북을 열어 보며 느꼈던 호기심과 지금 AI를 앞에 두고 느끼는 호기심이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새로운 기계가 신기했고, 지금은 그 기계와 함께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일이 신기하다.
그래서 요즘의 변화가 더욱 흥미롭다.
일을 하는 동안 배우고, 배운 만큼 다음 일을 조금 다르게 해 본다. 오래 해 온 일에서도 새롭게 알아 갈 것이 생긴다.
끝나지 않는 공부
그렇게 생각하니, 젊은 시절 후배가 했던 푸념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야 그 후배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그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오히려 계속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고.
이 변화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이 배우는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나도 그렇게 묻고, 배우고, 또 감탄하며 하루를 보낸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를 부하로 두고 일하는 느낌.
꽤 괜찮다.
생각해 보면, 그 부하들에게 매일 배우는 사장이 된 셈이지만.
매 순간 감사히, 오늘도 즐겁게.
이 글은 2026년 3월 12일 개인 블로그에 쓴 「일의 변천」(thejino.com)을 다듬어 옮긴 것입니다.